2019년 1월 5일 토요일

진시황과 글로벌 오퍼레이션(Global Operation)

2018년 말, 송년회 중에 한 동료가 Global Operation과 관련된 질문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중견, 중소기업들도 점점 해외로 판매와 생산거점을 넓혀가고 있고, 과거와 달리 M&A도 활발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한두번의 포스팅으로 정리하기에는 주제가 많이 큽니다. 오늘은 진시황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끈금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한 번 밑의 동영상도 보시고, 글도 읽어보아주시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아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밑의 동영상은  EBS 다큐프라임, 불멸의 진시황 1부로, 각 동영상은 약 15분 분량입니다. 재미있으니, 동영상 보시는 것을 추천드리지만, 바쁘신 분들은 동영상들 밑에 있는 글로 가셔도 됩니다.


Part 1

아직까지 역사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진시황. China라는 중국 이름의 유래가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제도를 만든 군주이기도 하지만, 분서갱유를 비롯해 망상에 어린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고도 있습니다.

그는 13세에 진나라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왕에 올랐기 때문에, 어머니인 제태후, 어머니의 정부인 여불위, 여불위가 데려온 환관 노애의 눈치를 보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22세가 될 무렵(기원전 238년), 노애의 반란 성공적으로 제압하면서, 여불위도 제거하고, 어머니의 영향에서도 벗어납니다. 그리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면서, 진나라의 힘을 키웠다고 합니다. 운하를 건설해서, 농사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부흥했다고 합니다.


Part 2

등용한 인재 중에 간첩이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인력들을 쫓아내는 축객령을 실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초나라 출신의 이사라는 신하게 간청한 바에따라 유능한 외국인 인재의 등용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농업의 발전은 진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고, 통일을 위한 준비를 해갔다고 합니다. 무려 100만명에 이르는 정예군을 준비하고, 기원전 230년부터는 통일전쟁을 시작합니다. 이웃한 한나라를 먼저 치고, 주나라에게 승리를 거두고, 연나라를 정복하고, 통일전쟁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춘추전국 시대를 정리하고, 기원전 221년 중국 최초의 황제라는 의미로 시황제에 올랐다고 합니다.

500여년간 서로 다르게 살던 나라들을 물리적으로 통일했지만, 진정한 통일국가를 만들기 위한 제도개혁도 빠르게 밀어붙이고 완성했다고 합니다.

1) 군현제

봉건제를 폐지하고, 36개군에 관리를 파견하는 정치시스템을 만듭니다. 능력에 따라 등용하고, 세습을 금지하는 중앙집권형 시스템은 관리들이 적극적으로 일하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아울러 관습이 아니라, 법률을 통해 통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진나라는 법치국가로서, 그 법률은 엄격했고, 또한 방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틀을 만든 이가 '이사'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의 통치철학과 제도를 만든 '정도전'이 떠오르네요.)

2) 도량형 통일

부피, 길이, 무게 등을 통일했다고 합니다. 도량형의 통일을 통해 상업이 발전할 수 있었고, 세금징수가 용이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경전이라는 전국화폐로 화폐도 통일했다고 합니다.



Part 3

3) 문자의 통일

각 지역에 학자를 보내서 글을 가르치도록 했으며, 오랫동안 분리되어 살아온 나라들의 문자를 통일했다고 합니다. 글과 말이 통일되어야 진정한 통일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이때의 문자 통일 덕분에 이후 현재까지 중국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합니다.

책을 불태우고(분서), 학자들을 생매장했던(갱유) 사건들이 대표적입니다. 봉건제를 원했던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대해 대응으로 기존 철학을 유지하고 했던 책을 태웠던 것이라고 합니다. 농경, 기술, 천문 등에 대한 책들은 왕궁에 유지했고, 서적 모두를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공인서적은 그대로 남겼었다고 하네요. 460여명의 유생을 산채로 묻는 사건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한나라 시대 역사서적에 의하면 유생이 아니라 도사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해석되고 쓰여지다보니, 진을 멸망시킨 한 나라에 의해 기록된 역사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국의 통치자로서 죽는날까지 현장을 뜁니다.

매일 120근의 죽간을 읽었던 일벌레였으며, 통일된 제국을 12년간 5번 전국순행을 했다고 합니다. 제도를 정비하고, 통합을 추구하고, 부정부패에 엄격했으며, 백성에게는 평등주의를 추구했다고 합니다.

이민족의 침입이라는 골치거리에 대항하여, 현재의 만리장성이 된 국가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데, 당시 인구 2,000만명 중 100만명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만리장성의 안쪽으로는 전국적 도로망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210년, 50세의 나이에, 5번째 전국순행 중에 폭염, 과로로 인하여 사망함으로써 진시황의 시대는 끝납니다.

참고로 진시황을 다룬 EBS 다큐프라임 2부도 재미있습니다. 2부에서는 병마총의 발굴에 얽힌 이야기들과 함께, 진이 과학기술, 군사면에서 어떻게 앞섰기에 짧은 기간 동안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1부, 2부 모두 진시황에 대해 긍정적 관점에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만, 2,000여년 전 이전으로 돌아가 당시를 구경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위의 진시황 이야기가 영감을 주었으라 믿습니다.

a) Global Operation을 위한 Governance.

진시황이 중앙에서 관료를 파견하고, 평가했던 것처럼, 기업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HQ와 지역법인간의 관계입니다.  HQ에 힘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비슷하지만, HQ와 지역의 역할을 놓고 보면 보다 중앙집권적일 수도 있고, 보다 자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보다 중앙집권적 유형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고, 일본이나 유럽 기업들만 하더라도 자율적 유형을 선호하는 듯 보입니다.

과거보다 지금은 정보통신 및 물류/교통의 발전으로 훨씬 더 빠르고, 자세하게 어느 지역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술로만 놓고 보면, 중앙에서 훨씬 더 많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만, 지금은 현장에서 훨씬 더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자율권을 주는 것이 시대의 흐름인 것으로 보입니다.

b) 표준화

진시황은 도량형을 통일하고, 문자를 통일했습니다. 기업으로 놓고 보면, 용어, 기준정보를 표준화하고, Rule과 프로세스를 표준화하고, KPI를 표준화하는 것과 같은 작업을 했던 것입니다. 표준화가 잘 이루어지면, communication에 들어가는 노력을 줄일 수 있고, 관련된 각종 일들이 단순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GSI(Global Single Instance) 유형의 ERP를 오래전부터 구축해왔습니다.  각 지역, 사업부 등의 차이도 있겠지만, 가능한 공통부분을 표준화하는 노력이 있었고, 이것이 가능했기에 GSI를 통한 효과를 거두워왔습니다. 해외 기업들보다 GSI ERP 면에서는 훨씬 앞서 갔고, 지금도 앞서 가고 있습니다.  다만, 덩치가 커지면 변화가 느려질 수 있습니다. 표준화를 통해 효율을 거둘 수 있었지만, Core 부분을 수정하는 것에 대한 Risk 부담 때문에, 새로운 기술 수용이나 혁신이 느려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시대가 흐르고 흘렀지만, 표준화는 큰 가치를 가집니다. 기업내에서의 표준화도 중요하고, 기업간 표준화도 중요합니다. Industry4.0 시대에서는 사물/기계간의 Communication를 비롯해서 표준화되어야 할 부분들이 늘어납니다.

독일에서 Industry4.0을 이끌고 있는 Platform Industrie4.0에서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표준화 Working Group입니다.

c) 솔선수범과 변화관리

진시황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12년간 5번에 걸쳐 통일제국의 각 현들을 순방합니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전국을 돌아보기도 했겠지만, 각 지역에서 신하들의 목소리도 듣고, 각 지역에서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도 했었을 겁니다. 아울러 본인이 만든 새로운 제도들이 잘 정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정착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찾아 제거하는 작업들도 했을 겁니다.

지금도 기업 경영진은 현장을 직접 방문합니다. 전화도 있고, e-mail도 있지만, 직접 방문하고 살피는 것만큼 확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없고, 현장을 이해하기에도 좋은 수단입니다.

변화관리가 깔끔하게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저항이 강한 경우에는 교육이나 계몽만으로는 안될 것입니다. 진시황이 잘 했다는 것이 아니라, 분서갱유도 당시에 동원할 수 있는 변화관리의 수단이자, 강력한 communication 이었으리라 싶습니다.




중국 역사상 엄청난 대업을 이루었음에도 진시황 그 자신도, 통일제국 진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대다수의 기업들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오래 장수하기를 바랍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덩치가 커지면 주위에서 존중을 받으면서 시기의 대상, 견제의 대상이 됩니다. 아울러 조직의 규모는 무한대로 커질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Centralized Governance가 힘을 발휘하겠지만, 일정 정도를 넘으면 Decentralized Governance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울러 덩치가 그렇게나 중요할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좀 뚱딴지 같은 포스팅이기도 했지만, 그저 개인의 의견임을 밝혀둡니다.

첫 편집일: 2019년 1월 6일, 정대영(SAP KOREA) 씀

댓글 없음:

댓글 쓰기